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키 맨틀 (문단 편집) === [[베이브 루스]], [[루 게릭]], [[조 디마지오]]를 계승하다 === [[파일:external/www.vintagecardprices.com/164237.jpg]] 맨틀은 마이너 시절 [[유격수]]로 뛰었지만, [[필 리주토]]에게 막힌 데다 유격수로서 딱히 수비가 좋은 편도 아니어서 중견수로 보직을 변경했다. 하지만, 양키스에는 이미 중견수 자리를 차지한 괴수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바로 '''[[조 디마지오]]'''였다. 그래도 맨틀은 강견을 앞세워 우익수로 뛰었지만, 디마지오는 맨틀이 자신을 향후 밀어낼 것임을 직감하고 일부러 쌀쌀맞게 대했다고 한다. [[1952년]], 디마지오의 예상대로 중견수로 자리잡은 맨틀은 3할 타율을 찍으며 스무 살짜리 치고는 매우 뛰어난 시즌을 보냈지만, 리그 최다 삼진의 불명예 또한 얻으며 양키스 팬들에게 야유를 받았다. 하지만 이후 절치부심한 맨틀은 [[1955년]]부터 본색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부족했던 건 절대 아니다. 그때까지의 커리어 로우 [[OPS]]가 21세 시즌 .895였으니 이건 뭐...] 23세 시즌인 1955년부터, [[1962년]]까지 그는 비율 스탯 .315 .445 .616에 320홈런을 날렸다. 특히 주목할 점은 1956~1957년에 각각 기록한 11.5/11.4fWAR과 MVP 3회 수상 (1956, 1957, 1962). [[1956년]]에 맨틀은 MLB 최후의 통합 트리플 크라운(양대 리그에서 타율, 홈런, 타점 1위)을 달성했으며, (0.353, 52홈런, 130타점), [[1957년]]에는 홈런 수가 34개로 줄었지만 '''0.512'''라는 어마어마한 출루율[* 이게 얼마나 대단한 기록인가하면, 20세기 이후로 5할 이상의 출루율을 기록한 선수는 맨틀을 포함에 3명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둘은 알다시피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 [[베이브 루스|각 팀의 역사상]] [[테드 윌리엄스|최고의 타자들이다]]. 21세기까지 포함하면 [[배리 본즈|배리 본즈*]]도 있지만 그는 약쟁이임으로 사실상 20세기 이후에는 이 셋뿐이다.]을 기록하며 1956년과 최소 동등하거나 '''어쩌면 능가하는''' 못지 않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이 덕분에 그의 1957년 OPS(1.177)와 wRC+(217)가 오히려 1956년 OPS(1.169)와 wRC+(202)보다 높다! 다만 트리플 크라운의 임팩트 덕에 일반적으로 미키 맨틀의 커리어 하이 시즌은 1956년으로 여겨진다. 물론 1957 시즌이 굉장히 저평가 받는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MVP 3회 수상은 도핑의 힘을 빌린 본즈에 이은 메이저리그 최다 수상 타이 기록으로, 이보다 많이 수상한 선수는 약의 힘으로 7회를 수상한 [[배리 본즈]], 맨틀 외 통산 3회 MVP 수상자들은 [[지미 폭스]], [[조 디마지오]], [[알렉스 로드리게스]], [[스탠 뮤지얼]], [[로이 캄파넬라]], [[요기 베라]], [[마이크 슈미트]], [[알버트 푸홀스]], [[마이크 트라웃]]뿐이다. 단일 리그 타격 트리플 크라운도 맨틀 이후 1967년 [[칼 야스트렘스키]], 2012년 [[미겔 카브레라]] 단 둘뿐이다. 게다가 이 시기 무시무시한 홈런 세례를 퍼부으며 과거 베이브 루스와 루 게릭이 이끌었던 영광스런 시대를 다시 되돌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양키스 타선은 한동안 맨틀 혼자만 이끌어야 했고, 그가 받은 무수한 견제는 역대 8위에 랭크된 볼넷 수로 남아 있다. 역대 1700볼넷 선수 중 20시즌을 뛰지 않은 선수는 맨틀이 유일하다. 2012년에 [[짐 토미]]가 최종 1747개를 기록, 1733개를 기록한 맨틀을 제쳤지만, 토미는 이 기록을 달성하기까지 21시즌이 걸렸고 올타임 2위에 해당하는 많은 삼진을 대가로 지불해야 했다. 동시대 뉴욕의 3대 중견수라 함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뉴욕 자이언츠]]의 [[윌리 메이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브루클린 다저스]]의 [[듀크 스나이더]]와 함께 미키 맨틀을 일컫는 것이었고, 베이브 루스와 조 디마지오의 후계자라는 프리미엄까지 겹쳐진 맨틀의 위상은 하늘을 찔렀다. 부상으로 도루 자체는 많지 않았지만 [[5툴 플레이어]]라 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심지어 좌타석에서 번트를 대고 1루로 냅다 뛰면서 상대를 농락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맨틀에 대해서도 ''''[[윌리 메이스|Mickey could do everything]]''''을 말해야 할 듯하다. 특히 맨틀의 홈런에 대해 더 자세히 언급하면, 기존의 담장 살짝 넘어가는 홈런과는 차원이 다른 것들이었다. 그의 홈런은 요새 야구장들이 외야 거리 360피트(110m)만 되어도 펜스 멀다고 징징대는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450피트(137m), 500피트(152m)급 홈런이 대부분이었다. 양키스 선수가 양키 스타디움에서 날린 유일한 장외 홈런도 그의 기록이며, 다른 팀 선수까지 포함해도 니그로 리거 [[조시 깁슨]]의 2개를 제외하면 유일한 기록이다. 그의 홈런 기록에 대해서는 기하학적인 계산까지 동원되며 야빠 수학자들의 단골 떡밥이 되었다. 비공식적이지만 기하학적 계산을 동원하면 '''650피트(198m)'''급 홈런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고 한다. [[파일:external/www.1960sbaseball.com/mickey-mantle--roger-maris.jpg]] 또한 1961년에는 그 유명한 M&M포가 결성, [[베이브 루스]]의 단일 시즌 홈런 기록에 나란히 도전하는 명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결과는 잘 알려진 [[로저 매리스]]의 61홈런으로 끝났지만, 뉴욕 팬들은 양키스 프랜차이즈 스타인 맨틀이 54홈런에서 멈춘 것을 전설적인 밤비노에 대한 예우라 여겼다. 실제로는 돌팔이 의사가 [[스테로이드]] 주사 바늘로 오염된 것을 쓰는 바람에 엉덩이에 종기가 나서였다고(당시 스테로이드는 메이저리그가 금지한 약물이 아니었다).[[http://www.nytimes.com/2009/06/20/opinion/20chafets.html|#]][* [[https://www.sbnation.com/mlb/2014/1/7/5284236/time-to-delete-mickey-mantle-from-the-hall-of-fame|이 기사]]에서는 스테로이드가 아닌 암페타민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또한 [[https://www.si.com/mlb/strike-zone/2013/05/13/mickey-mantle-corked-bat|2013년 SI의 기사]]는 스테로이드와 암페타민을 동시에 맞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1938년 연방식품의약품화장품법에서는 처방약은 의사 처방 없이는 판매할 수 없도록 규정했고,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처방약에 포함되었다. 의사가 아닌 돌팔이에게 스테로이드를 맞았으면 불법으로 스테로이드를 맞은 것이다. 여기에 대한 비난은 가능해 보인다. --물론 당시에도 금지 규정만 있었지 처벌 규정은 없었고, 1988년에야 생기게 된다.-- 처방 없이 처방약을 사용하면 연방법 위반이다. 리그 규정 이전의 문제이다.] 하지만 이런 위대한 업적들에 있어 어쩔 수 없는 장애물이 있었으니...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